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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의 의미를 설명하던 그는 얼마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열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전시를 소개했다.


조선 시대 문인오희문이 임진왜란 전후로 쓴 10년치 일기 ‘쇄미록’을 근거로 한 전시다.


조 교수는 “400년 전 선조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가족신문의 의미를 설명하던 그는 얼마 전 국립진주박물관에서 열린 '그래도 삶은 계속된다'라는 전시를 소개했다.


조선 시대 문인오희문이 임진왜란 전후로 쓴 10년치 일기 '쇄미록'을 근거로 한 전시다.


조 교수는 "400년 전 선조들이 고난과 어려움 속에서.


[진주=뉴시스]오희문의 난중일기 쇄미록 1~8권(보물1096호).


오희문의 임진왜란 난중일기 '쇄미록' 특별전 홍보 포스터.


여기 조선 중기를 살다간 한 평범한 양반이 있습니다.


이름은오희문(吳希文, 1539~1613).


해주 오씨의 13대손으로 연안 이씨와 혼인했고, 평생 과거시험이나 벼슬과는 인연이 없었던 인물이죠.


말 그대로 평범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그냥 양반이었습니다.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기록물로 꼽힌다.


국가유산청 제공 “찰방(察訪)은 사람을 불러다 꿩을 잡게 했다.


마침 산 중턱에 큰 노루가 풀 속에 자고 있었는데, 활 한 방으로 가슴을 뚫어 쓰러뜨렸다.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의 3대 기록물로 꼽힌다.


국가유산청 제공 “찰방(察訪·역참 담당 관리)은 사람을 불러다 꿩을 잡게 했다.


마침 산 중턱에 큰 노루가 풀 속에 자고 있었는데, 활 한 방으로 가슴을 뚫어 쓰러뜨렸다.


쇄미록 [국립진주박물관 제공.


오희문(1539∼1613)은 조선 중기의 양반으로, 9년 3.


보물 제1096호)은 난중일기, 징비록과 함께 임진왜란 전황과 16세기 후반 조선 사회상을 잘 알려주는 사료로 꼽힌다.


쇄미록 저자오희문(1539∼1613)은 학문은 뛰어났으나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사대부였다.


그는 임진년 이전인 신미년, 즉 1591년 11월 27일 한양을.


는 진중의 종합적인 기록으로서 사료적인 성격이 매우 풍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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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임진왜란 중에 작성된 또다른 일기류가 존재한다.


오극성·오희문·이로·정탁·조정·사명당·이정암 등의 일기를 들 수 있는데, 이와 다르게 <난중일기>는 최고지휘관이 7년 동안 전쟁을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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