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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태선(4-73회 / 1915-1988)
 관리자  2002-11-05  6587  

박태선(朴泰善)하면 전도관(傳道館)이 떠오른다. 1955년 창립된 기독교계 신흥종교로서 초기 공식 명칭은 한국예수교부흥협회였다가 그후 한국예수교전도관부흥협회로 불렀고 1980년 1월부터 한국천부교전도관부흥협회로 변경하였다. 즉 박태선 자신이 천부(天父)가 되었음을 선포하므로써 많은 이탈자들이 생겨났고 박태선은 1990년 2월 7일 사망했다. 전도관(천부교)의 분열의 양태는 몹시도 복잡하여 계열분파만 20여개 파에 이르고 있을 정도이다.
박태선이 9세 때 그의 모친이 사망했고 2년 후 아버지마저 사망하여 고아 신세가 된 박태선과 그의 형은 고향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덕천교회 주일학교에 다녔다. 해방이 되자 남대문교회를 다녔고 열심 있는 집사로서 노방전도까지 했다. 이때 부흥사 이성봉 목사의 집회에 참석하여 큰 은혜를 체험하였는데 그가 신앙생활을 한 지 21년 만이었다. 사흘을 밤낮으로 식음을 전폐하고 기도를 한 결과 사흘째 되는 날 새벽 4시 회개의 역사가 일어남과 동시에 뜨거운 성령의 불을 받았다는 것이며 그후 6.25사변으로 피난 도중 평택역에서 비행기 폭격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있을 때 자신의 피가 소변으로 빠져 나가고 성령의 피가 체내에 들어옴을 느끼는 피가름의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과열된 박태선의 광신과 맹신은 걷잡을 수 없었고 1954년부터 전국에 걸쳐 부흥집회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 무렵 남대문교회를 떠나서 창동교회의 장로가 된 박태선은 1955년 1월 1 ~ 7일에 서울 성동구 무학교회 집회를 하게 되었고 3월 26 ~ 4월 5일의 10일 동안 남산에서 천막을 쳐놓고 대집회를 가지면서 기성교회를 비판하기 시작했으며 1955년 6월에는 칼빈의 예정론을 뒤집어 엎고 자신이 소속한 예수교장로회를 떠나 그해 7월 1일 한국예수교부흥협회를 조직하여 오늘날 전도관의 모체를 이루었다.
박태선의 전도관운동이 탈선의 길로 치닫자 1955년 7월 한국기독교연합회(NCC)는 사이비종교운동이라는 성명을 발표했고, 1956년 2월 15일 경기노회에서도 박태선을 이단으로 규정했으며, 제 41회 총회(1956. 9. 20 ~ 25)도 박태선을 이단으로 규정했다.
1957년 4월 30일 박태선은 자신이 하늘의 권세를 부여 받았다고 설교중에 선언했고 5월 18일에는 조작된 성화를 가지고 사진에 은혜의 상징이 나타났다고 선언했으며 6월 9일에는 자신이 식물성 감람나무라고 자칭했다.
1957년 9울 1일 말세에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으려면 신앙촌으로 들어와야 한다고 하면서 신앙촌 건설을 서둘렀고 동년 10월 23일에는 자신이 '동방의 의인'이라고 선포하고 10월 25일에는 '기성교회는 마귀의 전당이니 구원이 없고 전도관에만 구원이 있다'고 외쳤다. 1958년 4월 6일 소사에 소래산(蘇來山)이 있으니 예수가 재림하는 산이라고 주장하였다.
1961년도에 덕소에 오토바이공장을 설립하면 집집마다 자가용 1대, 피아노 1대, 전축 1대씩을 주겠다고 호언장담을 하였으나 이루어지지 않고 도리어 신도들의 피땀어린 돈을 갖은 방법으로 착취했다. 덕소에 제 1 신앙촌, 소사에 제 2신앙촌, 경남 기장에 제 3신앙촌을 설립하고 신도들의 노동력과 재산을 착취하여 엄청난 부를 축적했다.
박태선 교주에 대한 별칭은 참으로 다양하다. '영모님(靈母任)', '감람나무', '동방의 의인', '이긴자', '이슬성신', '참 구세주' 또 1980년 1월 1일부터는 자신이 이 땅에 오신 '새 하나님'이라고 선언했다.
초창기 그가 자신을 '동방의 의인'이라고 주장한 것은 사 41 : 2 "주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는 바로 박태선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고 동방은 동양이며, 사 41 : 25 "해 돋는 곳-----"이란 동방 중의 극동을 가리키며 극동은 일본 한국 중국 세 나라가 있는데, 사 41 :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했으니 일본 섬나라는 조용하라는 뜻이고, 사 41 : 9 "내가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했으니 아시아 대륙 모퉁이에 붙은 한국이 바로 동방의 그 나라이며, 41 : 25 "내가 한 사람을 일으켜 북방에서 오게 하였나니-----"했으니 박태선의 고향이 이북으로 북쪽에서 월남했다는 뜻으로 해석, 자신을 동방의 의인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또한 박태선을 감람나무라고 한 것은 슥 4 : 11 ~ 14과 계 11 : 4에 기록된 것으로 "동방의 의인이요 감람나무인 박태선에게 이슬같은 성령의 은혜를 내려 준다"고 전도관 기관지인 {국제 기독교 뉴스}(1969. 9. 29)는 말하고 있다.
박태선 신앙촌 헌장 제 23조에 의하면 교역자의 심령 성결 여부를 박태선이 안찰 안수한 후 확인을 거쳐 임명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안찰이란 죄를 지적하고 죄를 사하며 성령을 물붓듯 부어주는 이긴 자의 권능이므로 죄 때문에 생긴 병은 안찰을 함으로써 치유된다고 주장한다.
전도관은 생수의 교리 때문에 유지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생수를 신앙촌 상품 판매의 경쟁에 악용해 왔고 특별생수권과 정기생수권까지 구분하여 값을 다르게 매기기까지 했다. 생수의 근거를 요 4 : 10의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행한 대화에서 나오는 생수에 두고 있으며 만병통치약으로 신도들이 믿도록 만능의 물로 선전했다. 생수는 병 치료 뿐 아니라 죄를 사하는데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다.
1980년 초부터 박태선의 심경에 급격한 변화가 생겨 공공연하게 강단에서 자신이 이 땅위에 오신 5,798세까지의 새 하나님이며 예수는 99%가 거짓이고 크리스마스날은 마귀날이므로 폐지한다는 충격적인 발표를 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한때 삭발령까지 내렸는데 그 이유는 모발에 마귀가 붙어 있다며 부부별거, 이혼 명령까지 내렸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새하나님을 자처하는 박태선이 성경까지 없애도록 지시하는 등 개인 우상화에 몰두하자 신도들이 속속 이탈하여 100만을 헤아린다던 신도수가 1990년 2월 7일 박태선이 사망할 당시 약 2천명으로 추산될 정도로 몰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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